해외 핵심광물 품귀로 국산화 R&D 연구 중단

비현실적 규제와 제련 공백 탓에 비축분은 무용지물

현장 수요에 맞춘 유연한 비축·방출 개편이 시급

시약까지 긁어모으는 현장, 멈춰 선 국산화 R&D

현재 해외 시장에서 핵심광물 원료 자체를 구할 수 없는 ‘실제 품귀 상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수급 절벽과 시장 왜곡은 고성능 영구자석의 핵심소재인 터븀(산화터븀)에서도 똑같이 재현된다.

현재 중국 내수 시장에서 산화터븀 가격은 kg당 약 6500~9000위안(한화 약 130만~18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해외 산업계에서는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통한 조달이 전면 차단됐다.

오죽하면 현장 일각에서 시그마 알드리치(Sigma-Aldrich) 같은 글로벌 시약업체를 통해 2g, 10g 단위의 연구용 시약을 긁어모아 라인을 돌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탄식마저 나온다.

10g당 50여만 원 선인 연구용 시약을 산업용인 1kg 단위로 환산하면 5500만~7500만원에 달해 중국 내수 벌크 가격의 수십 배에 이른다. 심지어 시약 재고마저 바닥이 나 산업 규모의 수급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실정이다.

희소금속 가격이 전방위로 폭등하다 보니 산업계 일각에서는 헛웃음 섞인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한때 효능 논란으로 천대받던 ‘어르신들의 게르마늄 건강 팔찌’가 이제는 가장 확실한 실물 자산(게르마늄 국제가격은 중국 수출 통제 이후 kg당 2000달러 안팎에서 8500달러 선까지 4배 이상 폭등)이 됐으니, 부모님 서랍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뒀던 팔찌가 온전히 있는지 안부전화라도 걸어야 할 판이라는 자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희토류 영구자석 공급망을 자체적으로 국산화하기 위해 R&D를 진행 중인 국내 기업들은 치명적인 직격탄을 맞았다. 가격 폭등은 차치하더라도, 실험을 위한 최소 단위인 ‘단 1kg의 터븀’조차 확보하지 못해 연구개발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미 지난달을 기점으로 현장의 연구용 비축 재고마저 완전히 바닥났다. 일부 유통업체가 공급을 타진해오기도 하지만, 원산지와 유통 이력이 불분명해 음성적인 밀수 물량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국가 핵심 공급망의 자립을 위한 기술 연구 현장이 밀수 원료에 의존해야 할 만큼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수천억 쏟아붓고도 방출 실적은 ‘전무(全無)’

그렇다면 국가의 비축 시스템은 어디에서 작동하고 있는가. 정부가 총사업비 2417억원을 들여 전북 군산 새만금에 국가 핵심광물 전용 비축기지를 짓고 매년 수천억원의 비축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한국광해광업공단을 통한 산화이트륨·터븀 등 핵심 중희토류의 실제 기업 대여 및 방출 실적은 지금까지 ‘전무’한 실정이다.

비축 창고에 물량이 쌓여 있어도 기업들이 단 한 번도 손을 뻗지 못한 배경에는 비현실적인 행정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동종·동량 상환’과 스펙 불일치가 만든 행정 규제의 덫

가장 큰 걸림돌은 ‘동종·동량 현물 상환(대여)’ 원칙이다. 시장에서 원자재가 끊겨 비축분을 빌리려는 것인데, 정부는 수개월 내 동일한 규격의 원자재를 시장에서 다시 사서 갚으라는 조건을 내건다.

공급망 단절 상황에서 애초에 이행이 불가능한 계약이다. 여기에 반도체와 영구자석 제조 공정이 요구하는 초고순도(4N~5N) 및 미세 분말 규격과 정부 비축분의 물리적 스펙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 중소·벤처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액의 금융 담보 요구까지 겹쳐 있다.

솥도 없이 쌀만 채운 365일 비축, 전시 행정 벗어나야

더 근본적인 모순은 국내 산업 생태계를 무시한 ‘탁상형 산화물 비축’에 있다. 비축창고에 쌓여 있는 산화희토류를 영구자석 제조에 쓰려면 이를 순수 금속과 모합금 형태로 전환하는 ‘용융염 전기분해 및 환원 제련’ 공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미드스트림(환원·제련)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기업 기반이 사실상 전무하다. 제련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쓸 수도 없는 원자재 형태만 주구장창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셈이다.

밥 지을 솥도 없는데 쌀만 수만톤 사다 놓고 든든하다고 자화자찬하는 격이다. 현장 기업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국책연구기관과 관료 조직이 과제 수주와 예산 확보라는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되고, 실물 경제와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모르는 정치인들이 이성이 아닌 감성에 휘둘려 보여주기식 정치를 통해 설익은 정책을 남발하며 막대한 국민 혈세를 낭비한 결과다.

정부는 지난 8월 12일 ‘미래성장동력 7대 시드(SEED) 프로젝트’를 통해 핵심광물 비축 품목을 24종에서 29종으로 늘리고 비축 물량도 최대 365일분까지 두 배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까다로운 방출 규제, 스펙 불일치, 그리고 미드스트림 부재라는 구조적 결함을 방치한 채 비축 일수와 창고 규모를 1년치(365일)로 늘리는 것은 공허한 전시 행정에 불과하다.

현장과 동떨어진 ‘방출 행정의 빗장’을 과감히 풀고, 제련·합금 생태계와 연계된 유연한 실수요 맞춤형 방출 체계를 구축하지 않는다면 365일분 비축 기지는 국가 공급망의 보루가 아니라 수천억 원 혈세로 지은 거대한 ‘전시용 박제 창고’로 전락할 것이다.